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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일기] 기억에 남는 동료. 박사 초년생 때의 기억.

rei.lich 2025. 2. 17. 23:16

이제와서 넘나 늦은 기록 시작이긴 하지만.

더 흐려져 사라지기 전에, 졸업하기 전에, 기억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오늘은 가끔 생각나는 아주 초반의 동료들 이야기 조각 모음.

 


 

새 도시, 새 대학교에서 내가 들어간 랩은, 무려 아시아 학생이 처음(!)인 곳이었다.

물론 외국인 학생들은 있었지만 다 서양에서 온 친구들 (러시아, 동유럽, 그리고 미국, 남미) 였었고,

그나마 아시아 가까운 곳이라면 중동계, 이정도가 다였다. 근데 그것도 이제  다 한명 씩인 ㅎㅎㅎ...

 

나와는 또 다른 점은, 그들은 그래도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배워왔던 애들이라,

기본적으로 독일어로 대화를 하려고 했다는 것.

나는... 독일어로 '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있었을 때라 무조건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고,

랩 친구들은 또 영어로 말하는 것을 익숙지 않아하는, 바이에른 주를 벗어나 본 적도 잘 없는, 바이에른 토박이들이 대부분였기에,

초반엔 특히 다들 나에게 말을 잘 걸지 않으려 했다. ㅎㅎ

아시아인을 가까이서 본게 처음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2000년대에 그런 곳이 있다고? 했는데 있더라 ^^ ㅎㅎ

 

우리 랩은 미디어 학제간 연구, 특히 법학과 긴밀하게 연결된 프라이버시 랩이었는데,

그래서 대도시(뮌헨 ㅋㅋ)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온 친구들도 좀 있었다.

그런 애들도 바이에른 안에서 나고 자라고 한 토박이들이라 나를 신기해 했다...ㅋㅋㅋ

이 곳에서 몇주 있다보니, 이미 독일 다른 도시를 경험해봤기에 독일을 쫌 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헤센 주에서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사뭇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이정도로 보수적이고 옛날에 머무른 느낌일 것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입학하고 초반에 가깝게 지냈던 무리들 중 몇몇이 모여서 술자리를 가졌었다.

변호사를 하다가 온 친구M와 학교 근처(1-2시간 거리) 작은 마을이 고향인 온 친구B,

커플인데 학부-석사-박사 까지 같이 하고 있는 둘(M&M),

그리고 나.

그 커플 친구네 집에서 저녁먹고, 나와서 바에 가서 맥주 한잔 씩 하고 집으로 가는 길.

 

변호사 친구M가 좀 거나하게 취했었다.

그나마 큰 도시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던 친구였지만 일본 사람 이외 아시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던 그 친구는,

그냥 독일 푸근한 아저씨 같은 체형에, 안경에, 밝은 금발에 동글동글하고 키도 그리 크지 않은,

흔히 생각하는 게르만!의 인상은 아닌 독일인이었다.

오히려 키크고 덩치있는 시골 마을에서 온 친구B가 전형적 독일인 같이 느껴졌다. 적어도 당시의 내 눈엔 말이다.

 

근데 M이... B에게,

넌 시골에서 와서... 블라블라... 계급이 달라서 블라블라... 박사를 하면 화이트칼라가 되기는 하겠지만...

시작점이 다르다는 둥, 농사일 하는 걸로 돌아가는건 어떻냐는 둥... 이런 식의 불쾌한? 말을 쏟아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니 지금 시대가 어느땐데 계급이 어쩌구...ㅋㅋ... 이런 말을 하냔 말이다.

B도 취한 상태이긴 했지만, 난 봤다, 울그락불그락 조금씩 더 타오르는 그 얼굴을.

취했구나, 하고 어색하게 얼버무리려는 나와 말이 없어진 B 외 일동...

아무도 편을 안 들어주다니, 아니 반박 아니면 농담의 말이라도 건내주길 기다렸는데 아무도 말을 얹지 않았다. 

무언의 인정인걸까.

 

다행히 갈림길이 나와서 급히 빠빠이 하고 각자 집으로 갔고, 다음날 만나서도 아무도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바이에른 토박이들은 특히 넘나 바이에른을 사랑하고, 아예 자치주로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 색채가 강한,

엄청 보수적인 곳이라는 것을 익히 듣고, 경험하고 있었지만.

신분에 대해 아직도 그런 보수적 인식이 있을 거라곤 기대를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

심지어 다른 인종인 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조금의 피해의식이 섞인 두려움도 올라왔다.

 

그 이후, B는 거의 공부 끝물이었어서 금방 졸업했고, M은 그 사건 후에도 1년 반 정도 더 같이 다녔지만...

브런치나 학과 행사, 랩행사 이외에 다같이 모여 하는 술파티/홈파티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M 너때문에 부들부들!!!ㅋㅋㅋ...)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그런 걸로 차별을 하는게 받아들여 지는 거라면...

흠. 아니 그것보다 뭔가 그 순간의 intimidating ... 그 미묘한 느낌,

독일인들 끼리 급을 나눠서, 그걸 입 밖으로 내고 다들 무언의 긍정을 하는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지워지질 않는다.

 

나아-중에 헤센 주 토박이 다른 독일 친구에게 물어보니,

바이에른은 그럴 수 있다며ㅎㅎ... 아니면 그 변호사 친구네 집안이 좋았을 거라며...

근데 그게 일반적인 건 아니라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해줬다.

물론 끝내 명쾌한 설명을 해주지는 못했고, 아직도 씁쓸한 뒷맛이 남아있다.

근데 M 최근에 프푸로 이직해서 일하는 것 같던데, 만나면 물어보고 싶네.ㅋㅋㅋㅋ

 

오늘의 짧은 일화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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