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시간 남짓 달려서 1박 묵을 도시 밀라노에 도착했다.
어릴 때 와본 이탈리아 도시들 중 그나마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게 밀라노, 로마인데
밀라노 다시 보면 다시 기억이 나려나, 하는 마음에 아주 두근두근했다.
여기서 살짝 실수한 건,
차를 가지고 온게 처음이라 도시 내 있다는 교통/주차 제한 구역 ZTL (Zona Trafico Limitato)*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밀라노 시외에 숙소를 잡은 것 ㅎㅎ
*도심의 일정 구역을 차량 제한 구역으로 설정한 것.
유적보호 등을 위하여 도시마다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거주민, 생계형 차량은 허가증을 발급 받아 제한 구역에 주차 가능하지만
이외 관광 목적 등 차량은 그 구역 외에만 주차가 가능하다.
자동차 여행중이라면, 꼭 숙소 예약시 호텔에 문의하여 다일권 ztl 이용권도 구매 혹은 주차장 제공 가능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단속에 걸리면 벌금 100유로 가량 부과된다고.
덕분에 숙소에서 시내까지 지하철을 타고 20-30분 가량 이동해야했다.
뭐 하루 묵는거라 그다지 큰 이슈는 아니었지만 장기로 있을 거라면 조금 불편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시내.
몇년만인가, 두오모.
밀라노 패션위크 조금 전이었어서 그나마 한산한 편이었던 것 같다.
조금만 늦게 갔으면 인파가 더 엄청났을 텐데...하고 안심하며, 익숙한 그 두오모를 보니 신나서, 광장을 휘젓고 다녔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인 곳이었고
또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아서 간간히 들리는 한국말이 아주 반가웠다.
저 성당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니... 부럽다...ㅎㅎ
내 기억속의 두오모 보다 규모가 큰 느낌.
뒷편은 보수 공사 중이었는데, 그 옆에 크게 달린 삼성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걸리려면 광고료가 얼마이려나...가 궁금한 광고수업 들었던 언론학도 ㅎㅎ
밀라노 두오모를 정면에 두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쇼핑 거리로 유명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가 보인다.
거대한 아치형 입구가 두오모 광장과 맞붙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코로나 때도 여행을 다니기는 했지마는 여행 중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본 게 왜인지 오랜만인 것 같아서,
광장이 마스크 없이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울리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상기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코로나짜이트 후유증인지 '아 마스크 없는데 괜찮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겠지.
쇼핑센터 내부.
사람이 너무 많고 또 내부가 소리가 살짝 울리는 공간이라 주춤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름다운 아치와 둥근 천장 (=galleria), 바닥 타일과 벽장식까지 눈이 즐거운 공간이라 구경하며 거니는 것만 해도 좋았다.
밀라노의 자랑 프라다 매장이 역시나 한가운데에 크게 있었다.
사람들이 밖에 줄 서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장 내부도 꽤나 붐볐다.
비토리오 갤러리아를 한번 쭉 지나서 나오면 보이는 성당인 San Fedele를 지나서,
두오모와 갤러리아를 중심으로 조성된 쇼핑, 레스토랑 거리를 한동안 걸었다.
유럽 한복판에 살기 때문에 웬만한 곳에 가지 않고서야 내가 관광객이라는 생각이 잘 안들게 되는데,
밀라노에서는 특히 많은 관광객들 속에 섞여서, 전혀 가늠도 이해도 안되는 이탈리아어를 들으며
이방인들의 이방인이 되었다는 느낌에 살짝 어색하면서도 새로웠다.
한바퀴 휘 돌고 다시 두오모 광장으로 돌아왔다.
잠깐 쉬면서 생각해보니 어언... 20여년 전에... 여길 왔더랬다.
저번에 한국 갔을때 찍어온 사진 중에 혹시 밀라노 갔을 때 사진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앨범 젤 위에 찍어둔 사진이 있었다.
맙소사. 23년 전이라니. ㅎㅎㅎ..... 저때는 물론 애기(키가 큰 편이었음)...였지만 지금은...
지금도... 응애예요..... 흑흑... 세월 참 빠르다.
달라진게 있다면 그때는 마냥 해맑게 엄마 아빠만 쫑쫑 따라다녔다면,
이제는 내가 책임지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구글맵보며 다니고,
좀 더 이쁘게 사진을 남기려고 한다는 것 뿐.
또 다른 점은...
하얗게 때빼고 광낸건지 두오모가 더 밝게 빛나고 있다는 점. 사진 보고 알았다.
또... 그때도 역시 사람은 많았지만 아시안 관광객이 엄청 많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사실 너무 오래전이라 디테일한 건 기억도 잘 안난다.
이탈리아에 유독 많았던 박물관에서 열심히 받아적고 인생피자를 먹은 기억만 강렬할 뿐.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다보니 배가 고프다.
구글 평점에만 의존해서, 근처에 있는 식당 중에 추려보기로 하는데,
Salsamenteria di Parma 라는, 팔마 지역의 조제식품 판매점/델리 Delicatessen 이라는 뜻의 직관적인 이름의 레스토랑이 눈에 띄었다.
입구부터 '우리 직접 만들어 쓴다!' 티가 팍팍나는 치즈, 햄들이 가득이었...는데 사진이 없네.
멜론과 여기서 만들었다는, 2년 숙성 (!!) 프로슈토가 함께 나오는 콜드디쉬 piatti freddi 를 전식 겸으로 시키고,
추천해주는 화이트와인을 함께 곁들였다.
팔마 지역에서는 저렇게 사발에 주는게 전통이란다.
이거 완전 막걸리 느낌 아냐! 하면서 신나게 들이켰다.
역시 더운나라답게 멜론이 아주 달고 맛있었고,
프로슈토도 짠맛 덜하고 특유의 쏘는 듯한 감칠맛이 은은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2년이나 숙성한 햄이라니... 발효식품(김치, 장류 ㅎㅎ)의 나라에서 온 나에겐 넘나 찰떡이었던 것.
날이 더워 상할 염려가 없고 혹은 바로 독일로 돌아갈 일정이었다면 거기 있던 다리 하나를 통으로 사 왔을지도 모른다.
메인은 고기 말고 파스타로 가자,해서 primi에 있는 파스타 중 하나로 골라보았다.
소고기 라구와 베샤멜 소스라고만 딱 적힌, 아주 전통적으로 보이는 라자냐를 시켰고,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었다.
아니 정말 들은게 별로 없는 느낌인데 어쩜 이런맛이 나지? 싶은,
깊은 맛이 나는 라구였다.
독일에서 라자냐를 시키면 보통:
라구에 와인맛만 너무 강하게 나거나, 라구에 들은 고기가 비리거나
(나에게는 독일 고기가 소,돼지 막론하고 대체로 비리다...)
베샤멜이 크림소스로 대충 버무린 느낌이라거나 혹은 생략하거나
라자냐 면이 빳빳하거나 말라버린, 조리하고 오래된 것 잘라 내놓은 느낌이거나...
해서 실망하기가 일쑤였는데 여기 라자냐는 정말... 맛있었다.
일단 면이 말랑말랑 갓 요리한 느낌,
라구 소스에 고기 잡내, 비린내 하나 없이 깔끔하고 신선한 맛,
베샤멜도 제대로 깊은 맛이라
이 세가지가 딱 내 기준에 맞아 들었다.
'아 이게 이탈리안이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맛.
와인도 또 시켜서 같이 정말 맛있게 먹었다.
치즈러버의 마음을 울리는,
테이블별 제공되는 무한리필 파마산 치즈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한국 식당에 간장, 양념장이 테이블 사이드에 놓여있는 것처럼,
많은 이탈리안 식당에는 파마산 통이 저렇게 놓여있어서 원하는 만큼 뿌려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나서 숙소로 가기 전,
시내를 마지막으로 한바퀴 더 돌면서 먹고 싶은 것들 리스트를 다시 한번 보고...
한국인들 여행 후기에 보면 꼭 나오는 피자빵이 유명한 베이커리 Luini에 줄을 서서 피자빵 하나를 샀다.
편의상 피자빵이라고는 하는데, 정식 명칭은 판체로띠 panzerotti 라고 하고,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지방의 전통음식으로 만두처럼 속을 채운 라비올리의 큰 버전이라고 보는게 쉬울 것 같다.
나는 제일 기본, 토마토와 모짜렐라가 든 버전으로 시켰다.
갓 나온 걸 받아들고 길에서 먹는데 이것도 역시 '와 별거 없는데 왜이렇게 맛있어!' 였다.
쭈욱 늘어나는 치즈와 중간중간 씹히는 상큼한 토마토에, 찹쌀도너츠 마냥 쫄깃한 겉 피까지.
심지어 저렇게 두꺼운 피였는데도 밀가루 맛 하나 안나고
기름은 많아보이는데 느끼하지도 않았다.
이 집 잘하네- 하면서 마지막으로 후식의 후식, 젤라또를 먹으러 간다.
밀라노, 피렌체에도 여러군데 지점이 있는 프랜차이즈 젤라또 집 Grom.
3유로 짜리 제일 작은 piccola 로 하면 두스쿱까지 주는데 나는 우유맛으로만 두스쿱.
쫠깃하고 화학적맛 안나는, 그래서 줄줄 흘러내리며 금세 녹아버리는 아주 진한 맛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이렇게 밀라노 시내 한바퀴 끝.
밀라노는 딱 하룻밤 자고 지나가는 스탑이었기 때문에,
또 두오모 빼고는 큰 기대가 없던 도시였기 때문에
이렇게 짧고 굵은 관광이 딱 적당했던 것 같다.
20년전 추억도 되새기고...
몸만 자란 나란 사람에 대해 조금은 철학적인 고민도 하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던, 특이한 경유지였다.
다시금 이탈리아는 역시 내 취향의 미식의 나라라는 걸 느끼면서,
다음 도시 피렌체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Fortsetzung fo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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